|  영화 DB
20081338D

400번의 구타

The 400 Blows
  •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 주연

    장 피에르 레오(앙트완), 클레어 모리어(질베르)

  • 제작국가

    프랑스

  • 등급

    15세관람가

  • 상영시간

    99분

  • 장르

    드라마

  • 기타

    1959년 제작, 흑백 Black & White, 프랑스어

  • 개봉일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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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네 살 소년, 무관심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유를 찾아나서다! 

  

 열네 살 소년 앙트완은 마음 둘 곳이 없다. 엄마와 새아버지는 앙트완에게 무관심하고, 딱히 말썽을 피우려 한 것도 아닌데 학교에선 선생님에게 문제 학생으로 찍혀버렸다. 유일한 위안은 가장 친한 친구 르네와 함께 학교를 빼먹고 영화관에 가거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숙제를 빼먹고, 무단 결석을 하는 등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사소한 일탈을 일삼던 앙트완은 급기야 쪽지를 남긴 채 가출하고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지만 냉혹한 어른들의 세상에서 그가 원하는 자유는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데…

 

ABOUT MOVIE 1.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누벨바그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다!

앙팡 테리블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트뤼포의 데뷔작 <400번의 구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세계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걸작 <400번의 구타>는 무관심한 부모와 억압적인 학교로부터 벗어나고자 영화와 문학으로 탈출구를 찾았던 트뤼포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청소년기의 순수와 반항을 그려낸 작품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눈부신 시작을 알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59년은 누벨바그의 탄생을 세계에 알린 해이다. 평론가로서의 활동과 단편영화 제작에만 몰두하던 영화작가들은 일제히 극장용 장편영화를 발표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자크 리베트와 장 뤽 고다르 감독은 그들의 데뷔작 <파리는 우리의 것>과 <네 멋대로 해라>를 완성했고,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두번째 장편 <사촌들>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은 트뤼포의 장편 데뷔작 <400번의 구타>가 칸을 정복한 것이다. 트뤼포는 [까이에 뒤 시네마] 誌의 평론가 중 가장 날카롭고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는 '앙팡 테리블'이었으며, 종종 선배 영화인들의 작품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선배 영화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네가 그렇게 아는 것이 많다면 직접 영화를 찍어 봐라."라며 비아냥거렸고, 그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유명한 영화 배급자였던 트뤼포의 장인이었다. 장인의 말에 발끈한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를 완성,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선다. <400번의 구타>는 1959년 칸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는데, 상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칸의 새로운 물결로 일어선 28살의 트뤼포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이 작품으로 트뤼포는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 당시 태동하던 누벨바그의 물결 속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트뤼포는 기존의 프랑스 영화계는 물론 칸 국제 영화제에 대한 거친 비난과 독설로, 바로 전 해인 1958년 칸으로부터 참석을 금지당했었다. 이렇듯 환영받지 못하던 그가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이었으며, 그만큼 <400번의 구타>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장 뤽 고다르는 이 사건을 두고 자신들의 기성 영화인들에 대한 승리로 간주하고 "영화작가들은 우리 덕분에 마침내 예술의 역사 속으로 진입한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들이 치켜 세운 작가들의 작품은 영화사의 고전이 되었으며, 누벨바그는 후대 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군이 되었다.

 

<400번의 구타>는 파리의 두 개 관에서 개봉했지만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평단의 찬사 또한 끊이질 않았으며 <400번의 구타>를 통해 각광 받은 누벨바그는 하나의 현상이자 이슈가 되었다. 이렇듯 비평과 흥행의 동시 성공은 트뤼포를 명망있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그의 영화작업에 커다란 자유를 주었다.


ABOUT MOVIE 2.

 

'나'에 대한 영화, '삶을 찍는' 영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400번의 구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400번의 구타>에서 트뤼포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과 영화광으로서의 추억을 담아낸다. 냉담한 부모 밑에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고,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영화에 모든 것을 걸었던 트뤼포는 그의 경험을 <400번의 구타>의 주인공 앙트완에게 그대로 투영한다. 자신이 주창한 원칙에 따라 '나'에 대한 영화, '삶을 찍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권위적인 학교 그리고 문제아

영화의 첫 장면인 학교 수업 장면은 권위적인 선생님과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과의 불협화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딱히 말썽을 피우려던 것도 아닌데 그를 문제아로 찍은 선생님의 오해로 앙트완은 학교에서 갖은 수모를 겪는다. 트뤼포는 이 작품을 통해 학교를 몰이해적이고 폐쇄된 공간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몰상식하고 폭력적인 프랑스어 선생님, 학생들의 반격에 방어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영어 선생님, 학생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체육 선생님을 희화화하여 학교의 권위를 조롱한다. 실제로 트뤼포는 "나는 학교에서보다 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자유로운 거리 그리고 일탈

폐쇄적인 학교와 대비되는 거리의 자유로움은 학교를 빠지고 놀러 다니는 앙트완과 르네의 모습을 통해 묘사된다. 이들이 배회하는 곳은 몽마르트 언덕에서 대로로 뻗은 순교자길을 중심으로 한 동네로, 실제로 트뤼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이들은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놀이 기구도 타며 거리를 활보한다. 실제로 트뤼포도 르네의 모델인 평론가 로베르 라슈네와 함께 학교를 자주 빼먹었고, 거짓말을 늘어놨으며, 가출을 일삼곤 했다. 답답한 학교와는 달리, 거리는 열린 공간으로 활기차게 펼쳐져 있다.

 

#무책임한 부모와 외로운 어린 시절

영화 속 앙트완처럼 트뤼포도 사생아로 태어나 외할머니 댁에서 생활하다가 8살이 되어서야 엄마와 함께 살게 됐다. 미혼모였던 엄마는 아이를 원치 않았고, 이 사실은 트뤼포에게 여성에 대한 원초적 불안을 심어준다. 앙트완은 가정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외모에만 신경 쓰는 엄마와 자동차 경주광인 아버지 때문에 주말을 혼자 보내지만, 트뤼포는 산을 좋아하는 부모 때문에 혼자인 적이 많았다. 앙트완의 협소한 아파트는 트뤼포가 어린 시절 부모와 살던 초라한 아파트를 연상시킨다. 자신을 포기한 생부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질 않아, 트뤼포는 성공 후 사립 탐정을 고용해 그를 추적했으나 실패했다.


ABOUT MOVIE 3.

 

트뤼포의 페르소나이자 프랑스 누벨바그의 페르소나!

시대와 사조를 대변하는 얼굴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장 피에르 레오’!

 

누벨바그의 눈부신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걸작 <400번의 구타>는 무관심한 부모와 억압적인 학교로부터 벗어나고자 영화와 문학으로 탈출구를 찾았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청소년기의 순수와 반항을 그려낸 작품으로, 트뤼포는 파리에 사는 14살 소년 앙트완 드와넬을 통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재현해낸다. 트뤼포의 페르소나이자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얼굴로 잘 알려져 있는 주인공 앙트완 역의 장 피에르 레오는, 트뤼포에게 페르소나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배우였다.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의 앙트완 역을 찾기 위한 오디션 현장에서 장 피에르 레오를 처음 만났다. 당시 14살이었던 레오는 학교에서 비행을 일삼는 문제아로 통했으며 악동이었지만 나이에 비해 풍부한 교양을 지니고 있었는데, 트뤼포는 그의 반항적인 모습에서 영화를 보려고 학교를 빼먹고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오디션 장면을 살펴 보면 레오의 깜짝 놀랄만한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다. "감독님이 장난기 많은 아이를 찾는다면서요?"(장 피에르 레오), "그럼, 넌 장난기가 많니?"(프랑수아 트뤼포), "네, 깊이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장 피에르 레오), "인생이 슬프니, 아니면 즐겁니?"(프랑수아 트뤼포), "난 즐거워요. 슬프지 않아요."(장 피에르 레오) 그가 발탁된 이유는 꾸밈없는 태도와 쾌활함, 아이답지 않은 능수능란함, 몽상적인 인상 그리고 도피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레오는 앙트완 역에 발탁되었고, 이때부터 수십 년에 걸친 그와 트뤼포 감독의 인연이 시작된다.

 

레오는 트뤼포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트뤼포는 레오의 보호자이자 멘토로서 그를 보살폈고, 레오는 트뤼포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20여 년에 걸친 ‘앙트완 드와넬’ 시리즈다. <400번의 구타> 이후 레오는 단편 <앙트완과 콜레트>(1962), <스무 살의 사랑>(1962), <훔친 키스>(1968), <부부의 거처>(1970), <사랑의 도피>(1979) 등 트뤼포의 작품들에서 모두 ‘앙트완 드와넬’이란 이름으로 출연하게 된다. ‘앙트완 드와넬’ 시리즈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보다 수십 년 앞서 한 소년의 성장을 영화에 담은 선구자적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 레오는 트뤼포의 변화하는 페르소나를 대변했다. 반항적이고 신경질적인 마스크와 예민한 남성상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트뤼포의 페르소나를 넘어 ‘누벨바그의 페르소나’로 각광받았던 장 피에르 레오는,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장 외스타슈 등 누벨바그 감독들과도 꾸준히 작업하며 시대와 사조를 대변하는 얼굴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ABOUT MOVIE 4.

 

혼란스러운 사춘기 소년의 현실과 이상 그리고 행복!

주인공 ‘앙트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키워드 BEST 3!

 

#글쓰기

<400번의 구타>에서 앙트완은 철자법과 동사 변화를 틀리고, 시 암송도 잘 못하며, 편지도 제대로 못쓰는 열등생이다. 펜으로 하는 작업은 모두 벌 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점점 상황이 나빠져 가출과 수감생활로 이어지게 된다. 선생님 몰래 야한 사진을 돌려보던 중 그 사진에 콧수염을 그리다가 교실 구석에서 벌을 서고, 벽에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는 낙서를 했다가 음절을 틀렸다는 선생님의 빈정거림과 함께 또 한 번 혼난다. 결석 사유서를 쓰려다 실패한 그는 ‘엄마가 죽었다’는 가당찮은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작문을 표절했다는 선생님의 지적을 받곤 정학까지 당한다. 즉, 쓰는 행위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것이다. 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선생님이 판서하는 시를 옮겨 쓰다 노트를 거의 다 찢고 마는 한 학생의 모습으로 잘 묘사돼 있다.

 

#영화

<400번의 구타>에서 등장인물들이 행복해하는 장면은 대부분이 영화와 관련되어 있다. 영화 속 극장은 땡땡이치거나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도피처이며, 갈등이 생긴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긍정적인 장소다. 학교를 땡땡이친 앙트완과 르네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영화를 보고 나온 앙트완의 가족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문제 많은 앙트완의 가정이 극 중 유일하게 행복해 보이는 장면이다. 영화관을 나서는 장면부터 경쾌한 음악과 파리의 아름다운 밤을 배경으로, 앙트완은 여느 행복한 가정의 아이처럼 부모와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워한다. 그렇기에 다음 날 아침 작문 시험 결과를 통보 받으며 교실에서 쫓겨나는 그의 모습은 전날 밤과 대비되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바다

앙트완은 자신을 군사학교로 보내려는 아버지의 의견에, 차라리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해군이 되고 싶다고 르네에게 말하는가 하면, 르네 아버지의 말을 훔쳐 마련한 돈으로 르네와 함께 바닷가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 앙트완의 엄마도 판사에게, 기왕이면 아이를 바닷가에 있는 감화원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바닷가에 위치한 감화원에 갇힌 아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척 자유로워 보이며, 감화원에서 탈출한 앙트완이 마침내 다다른 곳은 바다다. 앙트완의 바다를 향한 동경과 질주는 생명을 주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다. 프랑스어로 어머니(La mere)와 바다(La mer)는 우연히도 그 발음이 같다. 작품의 끝을 장식하는 바다는 소년의 엄마와 맞닿아 있지만, 그 엄마에게 돌아갈 수 없으므로 방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ABOUT MOVIE 5.

 

기존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십대 소년의 방황!

경직된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보고서!

 

기성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그려낸 <400번의 구타>는 어린 소년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억압과 폭력을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권위적인 학교, 강압적인 분위기의 청소년 감화원은 몰이해와 처벌로만 이루어진 보수적인 공간이며 이곳에서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소년은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연민을 이끌어낸다. 영화 속에서 학교, 가정, 경찰서 그리고 감화원은 부르주아 사회의 근간이자 이를 합법적으로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곳이다. 또한 선생, 부모, 경찰은 제도에 의해 주어진 속물 근성을 지닌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선생은 부모가 무책임하다고 말하고, 부모는 최선을 다했으며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영화 후반부 경찰서와 유치장 그리고 감화원으로 이어지는 장소들에서 앙트완의 자유는 제도와 권력에 의해 박탈당한다. 어느 새 어른, 권력, 법칙에 순응하지 않는 반항아가 된 그는 닫힌 공간에 유배된다.

 

기존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십대 소년 앙트완의 방황을 통해, 트뤼포는 당시의 기성세대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이 작품이 여느 성장 영화처럼, 한 소년의 방황이 누구나 겪는 한 때의 혼란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뤼포는 이미 확고히 확립된 사회질서에 대해서 딴죽을 걸지만, 쉽사리 해결될 거라는 낭만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 <400번의 구타>가 냉철하고 차가운 시선을 가진 현실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트뤼포가 앙트완을 보는 시선은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는 앙트완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그리면서 집단 전체가 지닌 사회적 특성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앙트완의 성장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그를 둘러싼 현실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견고하게 진을 치고 앉아서 아이들의 영역을 끊임없이 착취한다. 세상도, 앙트완이 공원에서 탔던 놀이기구처럼 어지럽게 돌고 있다. 기존의 체제를 보여주는 상징물인 이 놀이기구가 멈추기 전까지, 앙트완은 원심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부의 공간을 철조망으로 차단하고, 개인의 자유 대신 단체의 규율을 강요하는 제도적 장치인 감화원에서의 탈출은 반항의 결과로써 부르주아 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하지만 앙트완의 얼굴이 접사된 채 정지된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앙트완이 반항아로 낙인 찍힌 것이 천성 때문이 아닌, 사회 체계에 기인된 것이라는데 공감할 것이다. 한 소년이 선생과 부모의 몰이해와 무책임 하에서 사회와 어떻게 유리되는가를 보여준 <400번의 구타>, 성장기의 한 소년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보고서인 셈이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행복할 권리를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는 현 시대에 ‘동정 없는 세상을 향한 이유 있는 반항’을 굽히지 않는 앙트완의 모습은 깊은 울림과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COLUMN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는 10대를 소재로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영화에 속한다. 트뤼포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400번의 구타>의 주인공은 파리에서 자라면서 거칠 것 없이 범죄 세계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영리한 소년이다. 어른들은 그를 말썽꾸러기로 여긴다. 그가 침실에서 발자크의 제단 앞에 놓인 촛불을 붙이는 장면 등에서 그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 프리즈 프레임으로 줌인해 들어가는 영화의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본다. 유치장을 도망쳐나온 그는 바다와 육지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사로잡힌 채 바닷가에 서 있다. 그는 바다를 처음 보았다. 신성할 정도로 초연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 피에르 레오는 영화가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까닭 모를 상처로 마음 고생을 해온 것처럼 앙트완 드와넬을 연기한다. 이 영화는 트뤼포와 레오가 함께 했던 기나긴 공동 작업의 테이프를 끊은 첫 번째 영화다. 두 사람은 단편 <앙트완과 콜레트>(1962), <스무 살의 사랑>(1962), <훔친 키스>(1968), <부부의 거처>(1970), <사랑의 도피>(1979) 등 4편의 장편에서 앙트완을 다시 등장시켰다.

 

나중 영화들도 칭찬 받아 마땅한 영화들이고, 특히 <훔친 키스>는 트뤼포의 최고작 중 하나지만, 수수함과 풍부한 정서를 완벽히 담아낸 <400번의 구타>는 단연 걸작이다. <400번의 구타>는 트뤼포의 장편 데뷔작이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초석을 놓은 영화다. 우리는 이 영화가 트뤼포의 마음 한복판에서 샘솟듯 우러나온 영화라는 걸 느낄 수 있다.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를 앙드레 바쟁에게 바쳤다. 영향력 있는 프랑스 영화평론가 바쟁은 아버지를 잃은 젊은 트뤼포가 영화감독의 삶과 혼란스러운 삶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트뤼포를 품 안에 껴안은 인물이다.

 

<400번의 구타>는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의도로 삽입된 요소가 거의 없다. 영화의 모든 요소는 마지막 장면의 충격을 더해주기 위해 삽입되었다. 앙트완의 행위는 더 큰 말썽으로 이어지고, 그는 결국 말썽의 소용돌이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친구와 함께 타자기를 훔친 앙트완은 타자기를 되돌려 주려고 애쓰다가 붙잡혀 소년원에 가게 된다. 가슴을 저미는 것처럼 비통한 장면에서, 앙트완은 부모의 품에서 떠밀려 나와 사회 기관을 향해 길을 떠난다. 슬프게도 부모는 관계 당국과의 대화에서 터무니없는 이유를 댄다. “그 애는 집에 돌아오더라도 다시 가출하고 말 거예요.” 그렇게 해서 경찰서에 가게 된 그는 유치장에 갇히고 매춘부, 도둑들과 함께 어두운 파리 거리를 질주하는 경찰차에 실리는 신세가 된다. 창살 사이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은 디킨슨 소설의 어린 주인공 같다. 싸늘한 계절에 파리에서 흑백으로 촬영한 영화의 다른 장면에서도 앙트완은 이와 비슷한 표정을 보인 적이 있다. 앙트완은 바람을 가리기 위해 늘 재킷 깃을 세우고 있다.

 

트뤼포의 영화는 비가도 아니고 가슴 아픈 비극도 아니다. 영화에는 재미있고 유쾌한 순간들도 있다. 체육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고 파리 시내 조깅에 나서는, 거리 위에서 아래를 보고 찍은 시퀀스는 아주 소중하다. 아이들이 대열에서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결국 선생님은 두세 명의 아이만 남은 대열의 선두에 서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앙트완이 멍청한 실수를 저지른 다음에 등장한다. 발자크를 위해 촛불을 켜던 앙트완은 작은 제단에 불을 옮기고 만다. 불을 끈 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난 후 앙트완을 용서한다. 그 후, 영화를 보러갔던 가족들은 웃음을 지으며 귀가한다.

 

<400번의 구타>에는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때마다 앙트완은 진지한 얼굴로 스크린을 응시한다. 우리는 젊은 시절의 트뤼포가 돈만 있으면 항상 극장으로 도피했음을 알고 있다. <400번의 구타>에 등장하는 장면은 트뤼포의 나중 영화에 다시 인용되었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던 앙트완은 극장 로비에 걸린 스타의 사진을 한 장 훔친다. 트뤼포 본인이 영화감독으로 출연하는 <사랑의 묵시록>에도 트뤼포 캐릭터가 극장 앞에 붙은 <시민 케인>의 스틸 사진을 훔치러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던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트뤼포는 영화가 자신의 인생을 구원했다고 말하곤 했다. 비행 청소년이었던 그는 영화를 만나면서 애정을 품을 대상을 갖게 되었다. 바쟁의 격려에 힘 입은 트뤼포는 평론가가 됐고, 27세 생일을 맞기 전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누벨바그가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갈라놓는 분기점이라면 트뤼포는 가장 사랑받는 현대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으며, 영화 제작에 품은 심오하고 풍부한 애정을 자신의 영화에 담아낸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그는(1970년작 <야성의 소년>의 아이리스 쇼트, 상당 수의 연출작에서 택한 내레이션 등) 구닥다리 효과를 사용하는 것을 즐겼고, <검은 옷의 신부>와 <미시시피의 인어>에서는 많은 것을 빚졌던 그의 영웅 히치콕에게 경의를 표했다.

 

뇌종양으로 52세의 나이로 타계한 트뤼포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단편과 타 감독 영화의 각본을 제외하고도 21편의 장편영화를 남겼다. 앙트완보다 어린 학생을 등장시킨 <포켓 머니>에서 느닷없이 교실로 되돌아온 그는 벽시계 바늘들이 수업 종료 벨이 울릴 시간을 향해 느릿느릿 기어갈 때 생겨나는 참기 힘든 긴장을 다시 보여줬다. 그는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드는 와중에도 다른 영화와 감독들에 대한 글을 썼고, 히치콕의 작품별 인터뷰를 담은 책을 발간하였다.

 

그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기이하고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영화는 <녹색 방>이다. 세상을 떠난 각자의 연인을 기억하려는 열정을 공유한 남자와 여자에 대한 헨리 제임스의 소설 [죽은 자의 제단]이 원작이다. <녹색 방>이 트뤼포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녹색 방>을 작가주의 이론에 대한 트뤼포의 오마주라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쟁과 그의 제자들(트뤼포,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루이 말)이 만든 작가주의 이론은, 영화의 진정한 작가는 스튜디오도, 시나리오 작가도, 스타도, 장르도 아닌 감독이라고 선언했다. <녹색 방>에 있는 인물들이 과거의 위대한 감독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트뤼포를 위한 제단도 그 방에 놓여 있을 것이다. 앙트완 드와넬이 그 제단에 촛불을 밝힐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로저 에버트, [위대한 영화] 중-

 

 

 

BEHIND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라는 영화 제목은 글자 그대로는 ‘400번의 구타’로 해석되지만 프랑스어 관용구 표현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 말썽을 일으키다’ 라는 뜻이다.

 

-장 피에르 레오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소년이었다. 심지어 그의 교장 선생님이 트뤼포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버릇없고 건방지고 도전적이고 모든 형태의 규율 위반은 도맡아 합니다. 이 아이는 점점 더 심각한 성격 장애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트뤼포는 그를 학원에도 보냈고, 다른 집에 맡겨 교육도 시켰다. 그때마다 레오는 말썽을 일으키거나 도망치곤 했다. 결국 트뤼포는 자기 아파트에 방 한 칸을 내주어 레오와 같이 살게 된다.

 

-<400번의 구타>가 칸 영화제에 초청되기 2년 전인 1957년, 트뤼포는 ‘아르’지를 통해 칸 영화제를 공격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는 “칸 영화제의 미래는? 다섯 심사위원이 한림원 회원, 문학의 득세 예상”이라는 공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선전 포고를 했다. 이 기사는 분노를 일으켰고,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반론 게재를 요구했다. 이듬해 칸 영화제는 트뤼포에게 영화제 취재 허가증을 내주지 않았지만 그는 당당히 참석했다.

 

-영화의 마지막, 마침내 다다른 바다에서 반항적 영혼의 초상과도 같은 앙트완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정지된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며, 이후 수많은 작품들에서 오마주 되었다. 이 유명한 프리즈 프레임 기법은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미 앤 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이 투 마마>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 드라마들의 인상적인 명장면에 두루 쓰였다.

 

-<400번의 구타>는 이후 수많은 작가들을 통해 오마주 되거나 그들의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는데, 차이밍량의 영화 <하류>에서 주인공 이강생이 불 꺼진 방 한 켠에서 훌쩍이며 보던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심지어 차이밍량은 2001년작 <지금 거기는 몇 시니?>에 <400번의 구타>의 주인공 장 피에르 레오를 캐스팅해 누벨바그 세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잠수종과 나비>는 <400번의 구타>의 오프닝 장면을 가져와 오마주를 바쳤는데, 주인공 보비가 스포츠카를 타고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를 질주하는 이 장면엔 <400번의 구타>에서 쓰였던 음악이 그대로 흘러나온다. 또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프란시스 하>에는 <400번의 구타>를 보는 장면과 영화 음악이 삽입되기도 하였으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는 주인공이 경찰 호송차에 실려 떠나가는 장면을 그대로 오마주 하였다.

 

- 영어 수업 시간에 반복 등장하는 “Where is the father?”라는 문장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작품 속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상징한다. 실제로 등산에만 관심이 많았던 트뤼포의 양아버지는 <400번의 구타>에서 자동차 경주에만 몰두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친구 르네의 아버지 역시 자식에게 보다는 경마와 말에만 열중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갈망은 이후 트뤼포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제71회(2014)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는 트뤼포에 대한 헌정으로 제작되었으며, <400번의 구타>의 주인공 ‘앙트완 드와넬’의 초상화로 디자인되었다.

 

-잔느 모로가 첫 출연한 트뤼포의 영화는 <쥴 앤 짐>이 아닌, <400번의 구타>다. 그녀는 영화 중반, 앙트완에게 개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여자 역으로 잠깐 등장한다.

 

-화가이자 재즈 음악가인 노구치 히사미쓰는 <400번의 구타>의 일본판 포스터를 디자인했는데, 여기서 그는 검은색 자라목 스웨터를 코 위까지 끌어올려 얼굴의 절반을 가린 앙트완의 모습을 그렸다. 트뤼포는 이 포스터를 너무나 좋아해서, 1962년에 만든 단편 <앙트완과 콜레트>에서 앙트완의 방 장식물로도 사용했다. 

 

 

ABOUT NOUVELLE VAGUE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나타난 일련의 새로운 영화들을 가리켜 프랑수아 지루(Francois Giroud)는 ‘누벨바그’란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의 프랑스 영화계에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영화가 문학만큼이나 자유롭고 섬세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다’는 아스트뤽(A.Astruc)의 ‘카메라 만년필설’에 의해 일어난 새로운 영화관, [까이에 뒤 시네마] 誌의 비평가 그룹이 주도한 신랄한 비평의 열기, 로베르 브레송이나 막스 오퓔스 감독 등에 의한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 잉마르 베리만을 위시한 유럽 작가들이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줄거리를 중심으로 심리적 리얼리즘을 중시했던 영화들은 물러나고, 예술적 상상력과 다양한 양식을 지닌 누벨바그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까이에 뒤 시네마] 誌를 중심으로 영화비평운동을 해오던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의 신진 감독들을 주역으로 한다.

 

사르트르(J.P.Sartre)의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으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섭렵한 영화광이었던 이들은, 기존의 획일적인 영화방식을 부정하고 문학이나 음악처럼 자유로운 표현양식으로서의 영화를 주장했다. 그들의 영화는 전통적인 내레이션의 타파, 즉흥적인 연출, 장면의 비약적인 전개, 과감한 카메라 워킹 등 새로운 감각의 영상미학을 창출해냈으며, 상업영화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새로운 개념의 예술이었다. 1920년대 독일의 표현주의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에 비견될 수 있는 영화사의 획기적인 사건인 누벨바그는 몇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사르트르와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을 배경으로 한다. 특히 카뮈의 [이방인]은 누벨바그 경향과 접근방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는 사건들이 펼쳐지며 주인공들은 논리도, 정의도, 질서도 없는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에만 집착한다.

 

둘째, 누벨바그 영화는 종래의 잘 짜여진 각본의 영화들과 구분되는 서술구조를 가진다. 전통적인 극작법이 파기되고 극의 결말도 애매하다. 기존의 제한적인 서술로부터의 자유는 감정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배우들의 즉흥적인 연기를 유도하고 야외촬영의 이점을 활용했으며, 스튜디오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롭고 가벼운 장비를 선택했다. 패닝(Panning)과 트래킹(Tracking)이 자주 사용되었고,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 덕분에 자유로운 촬영이 가능했다. 이들은 영화광 시절을 통해 얻은 깊이있는 안목을 바탕으로 영화 속에서 다른 영화인들과 영화들을 언급했고, 다양한 영화적 문법들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화의 미적 성숙을 위한 전환점을 이룬 누벨바그 운동은 영화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며 프랑스 영화산업에 활발한 독립제작의 여건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브라질의 ‘Cinema Novo’, 독일의 ‘Neve Welle’, 미국의 ‘New American Cinema’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Cinematheque Francaise)

1940년대 말 프랑스 메신느가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작은 시사실. 불과 50석 남짓한 그 시사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프랑스 영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좁은 방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숨죽이며 지켜본 청년들이 바로 할리우드 영화들과 현격하게 구분되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확립한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인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만났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으며 각자의 독특한 영화관을 확립했다. 영화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똘똘 뭉친 그들에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무성영화, 토키영화에서부터 독일 표현주의 영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 할리우드의 서부영화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던 그들은 또한 [까이에 뒤 시네마] 誌에 글을 기고하며 프랑스 영화계를 주도해 나가게 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4년 앙리 랑글로와(Henri Langlois)에 의해 시작된 영화 서클을 전신으로 하여, 1938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란 이름을 걸고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과거 영화 필름들을 보존, 수집 및 복원하여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영화들을 상영해줌으로써 프랑스 영화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45년 이후 정부 지원의 ‘Centre National du Cinema’의 보호 아래 운영되었으나, 1968년 랑글로와의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을 문제삼아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었다.





PRODUCTION NOTE

 

 

오마주

누벨바그의 작가들은 그들이 존경하고 모범으로 삼는 작가들에 대해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 작가들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400번의 구타>에서도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인용되었다. 먼저 앙트완과 르네가 학교를 빼먹고 극장에 가는 에피소드에서 둘은 극장에 붙어있던 영화 스틸을 훔쳐 달아나는데 그 스틸은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1953년작 <모니카와의 여름>의 한 장면이다. 베리만은 누벨바그 감독들로부터 ‘현대 유럽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체육 선생님을 따라 파리 시내 조깅에 나서는 아이들이 대열에서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는 유머러스한 장면은 장 비고의 1933년작 <품행제로>에 대한 오마주다. 문학에 대한 동경, 특히 발자크에 대한 예찬 또한 이 영화에 등장한다. 앙트완이 작문 시험을 대비해 발자크의 [절대의 추구]를 읽고 인용하며, 집안 구석에 발자크 신전을 만들고 촛불을 밝히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어 선생님도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앙트완의 작문을 표절로 몰아붙이면서, 발자크의 [불길한 사건]에 대해 언급한다. 트뤼포는 1968년작 <도둑맞은 키스>에서도 발자크의 [계곡의 백합]을 읽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 앙트완을 연출함으로써 발자크와 문학에 대한 자신의 동경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시퀀스

이 작품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구성되었다.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은 명확히 구분 가능하다. 공간적 배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앙트완이 일상을 영위하던 학교와 집, 친구 르네의 집과 파리의 거리들 그리고 경찰서와 감화원이다.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일상생활 부분에서 총 8일간 진행된 사건은 낮과 밤 그리고 점프 컷을 통해 생략적으로 표현된다. 이 부분에서는 여러 인물들과 앙트완의 관계를 통해 사건이 전개되는데, 인간의 다양한 관계 구조와 위계질서 하에서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보살핌 없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소년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묘사된다. 두 차례의 가출 끝에 결국 도둑질로 귀결되는 거리에서의 삶을 떠나게 되는데, 여기서 앙트완의 인생의 어두운 반전을 암시하는 새로운 배경인 경찰서가 나온다. 그리고 앙트완의 감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는 호송 장면을 지나 세 번째 시퀀스인 감화원 부분으로 이어진다.

 

 

앙드레 바쟁의 영향: 리얼리즘 양식

프랑수아 트뤼포에게는 누벨바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란 정신적 아버지가 있다. 앙드레 바쟁은 [까이에 뒤 시네마] 誌를 창간하여 40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편집을 맡아 운영하면서 누벨바그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인물로, 바쟁과의 만남은 트뤼포에게 여러 의미에서의 행운이었다. 그런데 <400번의 구타>의 촬영을 시작한 날, 바쟁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앙드레 바쟁에게 이 작품을 헌사한다’고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400번의 구타>에서 트뤼포는 바쟁의 이론에 많이 의존했는데 롱테이크 촬영 등 사실주의적 기법이 그것이다. 먼저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사실주의적 경향은 앙트완이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앙트완의 생활은 어떤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련의 비사건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전달된다. 즉,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집이나 학교에서 나태하게 보내는 행위들을 통해 인물의 성격과 사건들이 점차 드러나는 것이다. 앙트완의 행위들은 물리적으로는 길게 지속되는 롱테이크로 비춰진다. 대부분의 장면들에 롱테이크가 사용되었는데, 쇼트가 너무 길어 불편한 느낌을 줄 때조차도 자르지 않는다. 보통 커팅에 의한 연결은 불가피할 때만 사용한다. 이러한 롱테이크는 바쟁이 지지했던 장 르누아르 감독의 전심 공간 이론(depth of field, 화면 내 영역의 충실한 구성으로 연출 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영화사 초기의 미장센과 유사)을 수용한 것이었는데, 전심 공간 연출을 통해 세심하게 장치된 배경 위에 느리지만 수시로 움직이는 트래킹과 패닝 등 카메라 이동을 통해 롱테이크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촬영 방식이라 하겠다. 거리를 부드럽게 담아가는 트래킹 쇼트들과 일종의 시선과도 같은 패닝 쇼트들은 화면의 운동성과 속도감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상의 삶에 더 밀착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다양한 촬영·편집 기법의 사용

<400번의 구타>는 누벨바그 사조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형식적으로 가장 뚜렷한 특징은 간소화된 카메라 장비로 인한 변화였다. 가벼워진 카메라로 들고 찍기가 가능해진 덕분에, 갑갑한 세트장 대신 파리의 거리 모두가 영화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은 스튜디오가 아닌 파리의 실제 거리와 건물에서 촬영됐으며, 인공 조명 대신 자연광을 적극 활용해 만들어졌다.

 

트뤼포의 영화들은 고다르의 영화와 함께 표현 기교의 전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다양한 표현 기법을 구사했다. 트뤼포는 ‘모든 무기는 그것이 기술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유용한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형식적 표현 기법을 최대한 활용했다. <400번의 구타>에는 페이드와 디졸브가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디졸브는 연결되는 앞과 뒤의 쇼트 간 혹은 시퀀스 간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표현 기법인데,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앙트완의 심리 조사 인터뷰 장면에서 쓰인 디졸브는 형식적 기교뿐만 아니라 상징성을 지닌다. 인터뷰 도중 앙트완의 대답은 디졸브에 의해 끊어지거나 이어지는데, 어두운 조명과 함께 상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이 디졸브는 앙트완의 말이나 생각이 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방적인 것일 뿐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스톱 프레임은 그 프레임 비율을 변형하여 이전의 프레임보다 넓고 납작한 모양으로 보인다. 마스킹(화면의 일부를 가르는 광학 작용을 이르는 용어)이라 불리는 이러한 기법은 이야기의 결말을 닫지 않은 채 열린 형식으로 만들어 주는 기능을 한다. 마스킹의 사용은 화면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면서 프레임 내에 담겨지는 것들의 상징성을 확대한다. 바다를 향해 끝없이 달리다가 밀려오는 물살을 피해 돌아서는 앙트완의 미묘한 표정을 담으며 정지·마스킹되는 화면은,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려 하나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400번의 구타>는 줌 촬영, 스톱 프레임, 슬로 모션, 디졸브, 마스킹 등 다채로운 촬영·편집 기법을 통해 화면 안의 대상들을 기계적으로 변형하거나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누벨바그의 실험정신을 총망라, 후대의 영화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흥 연기

누벨바그의 감독들, 특히 고다르와 트뤼포는 즉흥 연기를 선호했다. 즉흥 연기는 이미 무성영화 시대 때부터 존재한 것으로, 초기 희극 영화에서는 즉흥 연기가 기본이었으며 할리우드 감독들이 선호했던 액터즈 스튜디오의 메소드 훈련 역시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유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메소드 훈련은 리허설 할 때 배우들이 만들어 낸 대사나 연기로 재구성된 대본을 이용하여 계산된 즉흥 연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반면 고다르나 트뤼포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즉흥 연기는 대본에 미리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대응하는 배우의 연기를 의미한다. 촬영 중 갑자기 제시된 상황에 대한 리액션과도 같은 배우의 즉흥 연기는 인위적이지 않을뿐더러 배우가 지닌 평소의 자연스러운 태도를 드러나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도 즉흥 연기를 살펴볼 수 있는데, 영화 후반부에서 앙트완이 감화원의 심리 상담사와 면담하는 장면은 정해진 대본 없이 촬영된 장면이다. 장 피에르 레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전에 질문과 대답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만 한 후에 트뤼포 감독이 직접 레오에게 질문을 던졌으며, 나중에 질문 부분만 여자 목소리로 더빙하였다. 즉석에서 자연스러운 반응과 대화를 이끌어내면서 즉흥 연기를 허용함으로써 그 나이 또래의 순수함이 드러나도록 한 명장면이다. 심리 상담사의 즉흥적인 질문에 대해 장 피에르 레오는 천진하고 솔직하면서도 어느 순간 아이답지 않은 응큼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이는 이러한 돌발적인 연출법 덕분에 포착된 것이다.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은 프랑스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장 콘스탄틴이 담당했다. 그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나의 회전목마(Mon Manege a moi)’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은 영화의 시작 부분의 등장하는 ‘400번의 구타’다. 파리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가운데 흘러나오는 이 곡은 낭만적인 느낌을 전한다. 이 음악은 앙트완이 바닷가를 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흘러나오는데, 첫 장면과는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특히 현악기의 현을 튕기는 피치카토 연주는 서서히 느려지는 앙트완의 발걸음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여운을 남긴다.

 

 

 

 

 

 

 

 

EPILOGUE

 

나는 영화를 볼 때 꼭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이 들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 고통이 보이는가,

둘 중 어느 것이든 표현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영화,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뒤흔들어 놓지 않는 영화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나는 사회의 테두리 밖에 있는 인물들을 그리는 것에 집착했다.

나에게 영화는,

나의 인생과 밀착하고 있는 것이다.

 

 

 

 

-Francois Truffaut-

  

 

 

 

 ★★★★★

 

누벨바그, 그 눈부신 시작.

-Timeout-

 

영원히 늙지 않는 걸작.

-Chicago Tribune-

 

매력적이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영화.

-Variety-

 

프랑수아 트뤼포의 가장 뛰어난 작품.

-Chicago Reader-

 

영화에 대한 믿음을 되살리는 작품.

-The New York Times-

 

완벽을 넘어선 작품,

진실되고 진정성이 느껴지며 압도적이다.

-Observateur-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

-구로사와 아키라-

 

이토록 격렬한 감동을 느낀 건 처음이다.

-장 콕토-

★★★★★

  

 

 

 

칸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뉴욕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

 

『뉴욕 타임즈』 선정 올해의 영화

 

『타임』 선정 올해의 영화

 

『엠파이어』 선정 세계 100대 영화 중 29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불멸의 고전 39위

 

BFI 선정 청소년이 봐야 할 영화 BEST 10 

 

 

연출∙각색 |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

 

사랑에 목말랐던 시네마 키드

프랑수아 트뤼포는 193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건축일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비서였다고 하나 일설에는 그가 사생아였다고 할 만큼 불행한 가정에서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는 훗날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혹은 공포스러운 존재로서의 독특한 여성관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 당한 트뤼포에게 극장은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인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 주는 천국과도 같았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영화 속에서 그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이 때 그가 섭렵한 영화들은 그의 영화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광적으로 영화에 몰입하며 영화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꼼꼼하게 감상 일지를 작성하는 등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던 트뤼포는 15세 때 영화 모임을 결성하고 이 모임을 ‘영화 중독 집회’라 명명할 정도로 영화광으로서의 의욕을 비쳤지만, 당시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 운영하던 ‘카티에 라탱 시네클럽’과의 경쟁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바쟁과의 극적인 만남이 이뤄지게 된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에 의해 트뤼포는 감화원에 수감되나, 바쟁은 그가 감화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그의 일생 동안 트뤼포의 정신적인 아버지로서 그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었다. 그는 바쟁의 보호 아래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 등 당대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까이에 뒤 시네마] 誌에 글을 기고하는 등 평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프랑스 영화계를 일깨운 칼날 같은 비평

트뤼포는 1954년 [까이에 뒤 시네마] 誌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비평가로서의 명성을 날린다. 이 글을 통해 트뤼포는 종래의 프랑스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감독 자신의 개성이 결여된 것을 비판하고, 감독 자신의 독창적인 작가 정신이 담긴 ‘작가의 영화’를 만들 것을 주장한다. 트뤼포는 “진정한 감독은 작가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자신이 감독할 작품의 스토리를 스스로 발견해 내는 이들”이라 말하며 장 르누아르, 로베르 브레송, 장 콕토, 자크 타티 감독 등을 예로 들었다. 그의 ‘작가주의’는 당시 프랑스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훗날 누벨바그 감독들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빚어낸 새로움의 미학

트뤼포는 로베르트 로셀리니 감독 아래서 3년 간의 조감독 시절을 거친 뒤 첫 장편 영화인 <400번의 구타>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는 친구인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등 감독뿐 아니라 평론, 각본, 연기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은 재능 있는 영화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인 <야성의 소년>에서 의사로, <아메리카의 밤>에서는 감독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에서는 과학자로 연기한 바 있다. 그의 작품 중 12편의 각본을 직접 쓴 트뤼포는 소설을 각색하는 경우에도 자신만의 분위기를 창조해 내기 위해 충분히 작품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쳤다. 트뤼포는 당대 영화의 나아갈 바를 명확하게 짚어 낸 뛰어난 평론가였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성이 탁월한 영화들을 선보였다.

 

Filmography

<신나는 일요일>(1983), <이웃집 여자>(1981), <마지막 지하철>(1980),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1977), <용돈>(1976), <아델 H 이야기>(1975), <아메리카의 밤>(1973), <나처럼 아름다운 여자>(1972),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1971), <야성의 소년>(1970), <미시시피의 언어>(1969), <도둑맞은 키스>(1968), <검은 옷의 신부>(1967), <부드러운 살결>(1964), <쥴 앤 짐>(1961),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400번의 구타>(1959) 외 다수 

 

 


 

“이제 난 내 인생을 살고 싶어!”

앙트완 드와넬 | 장 피에르 레오

 

 “단지 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흥미를 이끌어내는 배우들이 있다.

  바로 장 피에르 레오가 그런 배우이다.” _프랑수아 트뤼포

 

장 피에르 레오는 장 폴 벨몽도와 함께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을 대표하는 남성의 얼굴로 떠올랐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서 어린 앙트완 드와넬 역부터, 차이 밍량의 섬세한 현대극 <지금 거긴 몇 시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의 아이콘적인 카메오 역할까지, 레오는 프랑스 영화계의 가장 유명하고 지속적이며, 때로는 가장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스타들 중 한 사람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레오는 시나리오 작가 피에르 레오와 여배우 자클린 피에로 사이에서 태어나 카메라 앞에서 성장했다. 열네 살 소년 앙트완 드와넬 역으로 그가 보여 준, 환멸이 안겨준 공포와 대범한 반항심이 뒤섞인 그 절정에 다다른 표정은 상당히 예언적이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와 너무나 흡사한 표정이 많은 젊은이들의 얼굴에 그 골을 새겼기 때문이다. <400번의 구타>를 시작으로 ‘앙트완 드와넬’을 주인공으로 하는 트뤼포의 연작 네 편에 출연한 그는 트뤼포의 페르소나로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장 외스타슈 감독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누벨바그와 함께 한 시대를 보냈다. 누벨바그 감독들 외에도 이탈리아의 젊은 감독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도 그를 캐스팅했다. 장 피에르 레오의 이력에서 가장 정점에 이른 해인 1973년, 그는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아메리카의 밤>, 장 외스타슈의 문제작 <엄마와 창녀>에 동시 다발적으로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오랫동안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는 보기 힘들었지만, 1990년대에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그의 모습을 스크린에 다시 등장시켰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차이밍량 감독이 그를 캐스팅해 누벨바그 세대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금 불러 일으켰다.

 

 

Filmography

 

<까밀 리와인드>(2012), <르 아브르>(2011), <얼굴>(2009), <몽상가들>(2003), <지금 거기는 몇 시니?>(2001), <이마 베프>(1996), <사랑의 탄생>(1993),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1990), <내가 본 파리, 20년 후>(1984), <사랑의 도피>(1979), <사랑의 묵시록>(1973), <엄마와 창녀>(1973),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아웃 원>(1971), <부부의 거처>(1970), <훔친 키스>(1968), <중국 여인>(1967), <미치광이 삐에로>(1965), <오르페의 유언>(196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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